1962. 현천교회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2Cor 6:2

현천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현천교회는 개혁신앙을 고수하는 개혁주의 교회입니다. 1962년 설립 된 지역 최초의 교회입니다. 설립 후 오늘까지 복음 전파 사역과 소외 지역의 봉사로 교적자 총 4852명이 출석했으며, 세례자 521명에게 학습과 세례를 베...

현천교회 연혁


현천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현천교회는 개혁신앙을 고수하는 개혁주의 교회입니다.

1962년 설립 된 지역 최초의 교회입니다. 설립 후 오늘까지 복음 전파 사역과 소외 지역의 봉사로 교적자 총 4852명이 출석했으며, 세례자 521명에게 학습과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설립 후 목사, 선교사, 전도사 사역자 27명이 본 교회에서 함께 임했습니다. 

1990년 해외 선교를 시작으로 해외 국제 교단들(미국 북장로교, 미국 언약 교단, 월드 호프 세계선교회, 실로암 세계선교회, 세계 목회자협의회)과 1000 여개 미자립 교회와 현장의 목회자들을 지원했으며,14개의 해외 교회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의 예배처를 건축하고 유지 지원 했습니다. 선교사 파송과 현지 선교사를 양성에 힘써 왔습니다. 

1982 ~ 2000년까지 현천리 지역의 유일한 교육, 문화 공간으로 소임 했습니다. 현천 새마을 유아원 ~ 화전 어린이집 및 유, 청소년 교실, 독거노인 돌봄, 인근 군 시설 위문, 동 하계 청소년 수양회 등등)

본 공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유지 재단으로 대표 연력으로 초기 통합 3인과 이후 합동 7인의 위임 및 담임 목회자의 연력으로 순환되어 법인 되고 자립 된 교회입니다. 2011년 공회의 청빙으로 담임 목회자 김관석을 지명하여 현재까지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혁


1962년 복음화를 위한 작은 불꽃

- 1962년 고양군 신도읍 현천리 복음화를 위한 서대문 교회 성도들의 전도로 시작되었다. 당시 정안복 장로와 전도자들은 매주 마을 전도에 헌신함으로 이듬해 마을의 새 신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하 교회기록 참고)
- 1963년 김성일 집사의 집에서 정기집회 예배처로 모이기를 공의하고 가무네 예배처를 현천교회라고 명하였다. (이하 교회기록 참고)
- 1964년 정안복 시무장로 부임.
- 1965년 현 교회의 장소(김성일 집사 성전 건축 부지 봉헌)로 서울 교회들의 건축비 지원과 전도자 성도들과 지역 성도들의 손으로 직접 교회를 신축하였다. (이하 교회기록 참고)
- 1965년 교회 봉헌 후 정만복 장로 사임, 서울 교회 전도자들은 본 교회로 돌아가다.

* 이인순 목사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군 10군단의 통역과 군종 장교로 흥남항 철수에서 큰 공헌을 하셨다. 전쟁 이후 인천 논현교회에서 시무하셨으나 뇌졸중으로 마비 말장애를 얻어 사역을 중단하셨고 본 교회의 사택에 거주하시면서 노부를 봉양하며 본 교회를 출석하셨다. 본 교회 설립 장로 김성일(참전 전우회. 장교 전역)의 도움으로 해당 지번에 사택을 직접 건축하셨다. 실향민으로 가족은 북에 있었으나 이후 교회에서 여전도자를 만나 슬하에 1녀를 두었다. 작고후에 교회는 노부와 가족에게 건축물을 매입하였다. 노부와 길을 달리 한 사모와 딸은 일본으로 건너가 선교하였고 2015년 귀국한 자녀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사택에 다녀갔다. 증언 기록물 - 증언자 : 심종섭 목사, 이승자(김형섭 목사) 사모.


1967년 이후 1980년 시험과 연단의 때

- 1967~1972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의 지원으로 교역자들이 파송 되었으나 시무자가 부임과 사임을 반복하였다. 변희관, 홍은호, 심종섭, 이강주 전도사 또는 강도사의 파송. 3개월 ~ 6개월 시무함. (이하 교회기록 참고)
- 1973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교단의 임시 위임자로 김대인 목사가 가위임假委任 하였다.
- 1975년 가위임假委任 이배형 목사의 지원으로 김충환 전도사 시무.
- 1980년 이순권 전도사 시무 3개월. (이하 교회기록 참고)

* 성전 봉헌 후 교인 세력 중심으로 교회를 점용한 결과 교회는 미션을 상실함. 목회자들의 수난(10여명의 목회자가 평균 5개월 미만 시무) 스스로 재정집사를 자청하고 교회를 자가 사업장으로 불렀으며 교회의 재정과 재산을 편취하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목회자와 성도들을 축출함. (이하 본 교회사 기록 및 목회 기록 참고)


1981년 말씀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우심.

- 1981년 김형섭 목사 공회 청빙.
- 1982년 편취 된 교회재산을 되찾음. (1982-1215 A2~F7. 교회 기록물 참고)
- 1983년 기존 교회 대지 이 외에 추가 대지 244평을 拂下함.
- 1983년 현천 새마을 유아원 설립.
- 1985년 교회와 사택 改造.

- 1995년 화전 어린이집 설립.  
- 1996년 실로암 현천 선교회 인도네시아 7 교회 건축.
- 1999년 김관석 전도사 시무.

- 2009년 김형섭 목사 소천.
- 2010년 김관석 담임 목회자로 공회 청빙.

* 김형섭 목사 : 1937년 평양 출생. 김경삼 목사(평양신학교 9회, 독립운동가)의 손자, 평양 청산병원장 김정효 장로의 4남으로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칼빈 대학교와 총신대학교 대학원 졸업. 북선교회 (북선동), 신암교회 (돈암동), 동선교회 (동선동) 개척. 부임한 교회는 수복교회 (면목동), 현천교회 (고양시)에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 
선교의 큰 사명을 두고 1980년 세계 언약 선교회(시카고) 아시아부 대표 목사로 활동. 한국 실로암 선교회를 설립하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에 직접 선교하시며 원주민 교회 7 교회를 매년 왕복하며 바울과 같이 현지 사역자들을 위로하고 믿음의 아들들로 세우셨다. 2008년 독일 세계 교회의 날 행사에 참석 후 귀국 중에 긴급한 패혈증으로 홍콩 국립 마리아 병원으로 후송, 3개월의 치료 후 비행 이송 진단을 허가 받고 귀국하셨으나 한 달 후 재발된 패혈증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임하셨다.  


2017. 9. 6. Writer. Gwan-Sok, K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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